호텔을 나와 지코쿠다니로 올라가는 길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어른들의 장난감', '누드'라는 글씨와 그림이 들어간 간판이었다. 마치 오래된 극장 간판을 연상케 하는... 홋카이도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의 호텔 근처에 이런 간판이 버젓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상당히 의아했지만, 나름대로 재밌는 광경이기도 했다. 그 옆 건물 2층에는 '모아'라는 이름의 '스낵'이 있었는데, 이 스낵이 내가 알고 있는 분식집 비스무리한 것과 전혀 다른 장소라는 것에 또 조금 놀랬다. 같은 발음인데도 이렇게 이름이 다르다니..
모아 스낵을 지나 세븐 일레븐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완만한 경사로 발걸음을 옮기자, 양편에 독특한 디자인으로 지어진 기념품점과 식당 등의 건물들이 보였다. 관광지인 만큼 당연한 것이겠지만, 건물과 입구의 장식들이 수수한 것이 없었다. 눈이 쌓인 거리를 걸어 올라가고 있자니, 길 오른편에 거대한 염라대왕이 설치된 시설이 보였다. 뭔가 싶어서 가까이 가봤더니, 동전을 넣고 복을 비는 냄비와 100엔을 넣으면 운세가 적힌 제비가 나오는 자판기, 그리고 도깨비그림이 그려져 있는 입간판이 있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이 염라대왕은 하루 중 정해
진 시간에 무서운 표정으로 변하며 소리를 내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걸 보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맞지 않아 멀뚱멀뚱한 얼굴의염라대왕만을 보고 왔지만. 도깨비 입간판의 얼굴 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서 거기에 얼굴을 내밀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거기서 사진을 찍고 다시 지코쿠다니를 향해 올라가자, 이번엔 좁은 삼거리에 빨간 오니와 파란 오니의 상이 놓여 있었다. 이 오니들의 기원이 케로로에서도 나왔던 그 오니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인상적인 구조물임에는 틀림없었다. 지코쿠다니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곳이니 만큼 설치해 둔 것일 수도 있겠자만. 지코쿠다니라고 씌여진 간판을 지나 점점 유황냄새가 짙어지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재촉하자 이번에는 수많은 식칼을 묻어두었다는 무덤이 나왔다.
무덤이라고 해서 봉분이 있거나 한 것이 아니라 무덤의 기원이 적혀진 석판과 비가 새워져 있는 정도였지만. 설명을 조금 읽어보고 조금 더 위로 올라가자, 드디어 지코쿠다니 입구가 보였다.
012
입구에 서서 본 지코쿠다니의 느낌은, 지옥이라는 름이 붙은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계속해서 내리는 눈 때문에 눈으로 덮인 부분이 많긴 했지만 뜨거운 지열이 올라오는 부분은 유황과 바위로 변색된 부분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는 그런 광경이었다. 지코쿠다니에 들어서는 입구 부분에서 문득 생각난 듯, 동생이 길 왼편 벽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만져보라고 알려주었다. 다른 부분은 날씨 탓에 차갑게 식어있었지만 과연 그 부분은 뒤에 지열이 지나가는 듯 따스한 온기가 나오고 있었다. 지난 여름 이곳을 다녀갔을 때 노인 가이드 분이 알려준 포인트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바닥에도, 눈이 덮여 미끄럽게 얼어붙은 부분과 지열 때문에 마른 돌바닥이 노출된 부분이 뒤섞여 있는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길 오른편으로 약사여래 가 안치된 작은 사당이 보였다. 지코쿠다니의 공기에 섞여있는 강한 유황의 냄새가 알려주듯, 이곳에서는 엄청난 양의 천연 유황이 생산되고 있고 그것이 약사여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자그마한 약사여래 사당을 살펴보고, 문득 하늘을 보자 결코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하늘이 어두워질 채비를 차리고 있었고 서쪽 하늘에서는 엄청난 양의 까마귀 떼가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지코쿠다니를 보러 가야 한다며 걸음을 재촉하는 동생을 따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