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나간 펑크 밴드 범프 오브 치킨의 좀 된 곡.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우리나라의 어떤 정신나간 학생이 이 곡의 가사를 배껴 단편소설을 만들어 무슨 문학상인가를 수상했다고 한다. 사실 가사를 읽어보면, 서사시까지는 아니라도 이미 가사 자체로 한편의 슬픈 이야기이다. 살을 왕창 붙이면 누구라도 한편의 소설을 뚝딱 만들어 낼 정도로 완성된 이야기인 게다. 저작권법을 두려워하는 관계로, 가사가 궁금하신 분은 나베르 박사님께 '범프 K'라고 여쭈면 얼마든지 찾아내실 수 있을게다.
이 좀 지난 곡을 문득 여기서 썰을 푸는 것은, 얼마전 구입한 기타프릭스V & 드럼매니아V의 수록곡으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 지나가면서 가사를 힐끗 보고 나중에 천천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잊어버렸었는데, 게임속에서 롱버전으로 만난 이 곡에 다시 제대로 꽂혀서 오늘 다시 구해 들어본 것이 원인이 되겠다. 좀 더 절절히 슬픈 느낌으로 만난 이 곡에 대해서 이야기하
고 싶은 것은 두가지.
하나는, 주인공 홀리 나잇에 대해서. 곡을 다 듣고 드는 느낌은, 홀리 나잇이 고양이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만약 강아지였다면, 그저 충성스러운 개의 훈훈한 미담 정도였을게다. 플란다스의 개 내지는 오수의 개 같은, 주인에게 목숨바쳐 충성을 바친, 인간의 오랜 친구 '개'의 이야기. 하지만, 이 곡의 주인공 홀리 나잇은 고양이이다. 그것도 불길함의 상징 같은 검은 고양이. 홀리 나잇이 고양이이기 때문에, 홀리 나잇을 주워기른 젊은 화가와 홀리 나잇은 친구이다. 개였다면 당연히 주인과 가축의 관계였을테지만, 고양이이기에 화가와 대등한 입장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고, 그렇기에 우정이랄까 사랑이랄까 그런 감정으로 목숨을 걸고 여행을 떠난 홀리 나잇이 더욱 슬프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원래 고양이보다는 개를 좋아하지만, 홀리 나잇은, 그 애처로울만큼 성스러운 기사는 고양이이기에 더욱 마음에 다가오는 것 같다.
이 곡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또 하나는, 뭐라 규정짓기 힘든 슬픔이다. 사실 좀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가사이긴 하지만, 화가에게 받은 이름-홀리 나잇-을 상기하며 혹독한 여행에 지지 않고 달려가는 고양이의 이야기는 도대체 무엇에 대해 슬픈지 얼른 규정짓기 힘든 그런 종류의 슬픔이다. 화가에게 받은 사랑을 여행으로 대신하는 고양이라서? 서러운 화가의 운명이 애처로와서? 검은 고양이를 멸시하는 세상이 무서워서? 대체... 내가 이 곡을 들으면서 눈물을 참느라 애써야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분명히 눈물을 참아야 할 만큼 슬프긴 하지만, 대체 왜 내가 슬픈지... 그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다. 그 이유를 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시기 바란다. 사실 이것이, 곡도 가사도 제대로 올리지 않는 이 글을 쓰는 이유다.
K는 고양이의 이름이 아니라, 밤에서 기사로 추서된 숭고한 고양이에게 바친 훈장이다. 알파벳 한글자라도, 그저 이름 한글자라도 좋으니, 나도 훈장을 받고 싶다. 훈장을 주었으면 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 생명을 걸 수 있는 그런 여행에 나서고 싶다. 어쩌면 이 곡이 주는 슬픈 감정은, 홀리 나잇처럼 달릴 수 없는 초라한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애처로움인지도 모르겠다. - 짤방은, 그나마 내 하드에 있는 정상적인 고양이 사진으로 올려본다. 이것도 어디서 퍼왔는지는 기억이 안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