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약속을 한다. 그중 만남을 가지기 위한 약속을, 아마 지금 젊은이들은 가장 자주 하지 않을까. 나 역시도 그러한데, 이 만남에 대한 약속 시간이라는게 사람마다 다르다. 아무리 표준 위성시계가 전달해 주는 동일한 시각의 휴대폰을 어지간한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다 하여도, 시간에 늦거나 일찍 가거나 하는 경우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이런 세상살이의 평범한 조건 때문에, 약속장소는 혼자 기다리게 되더라도 덜 심심한 장소를 고르게 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고, 나-혹은 내 지인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전자오락실이었다.
전자오락.. 이런 말 요즘은 진짜 아저씨들도 잘 안쓰는 말이 되어버렸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청소년 두뇌 개발, 스트레스 해소라는 문구로 장식된 전자 오락실이 동네 골목골목마다 존재했던 것이 불과 10년 안팎의 과거일이다. 나는 이 전자오락에 빠지게 되어서 인생을 그르친 - 건지 어떤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 케이스로, 국민학교 6학년 때까지 오락실에 가면 모두 다 깡패인 줄 알다가 친구들 따라간 오락실에서 만난 수퍼마리오3로 인해 여가시간의 방향을 급선회시킨 과거를 지니고 있다(왠지 거창하군). 중학교에 들어가서 보난자 - 톤마의 모험 - 파이널 파이트 - 다크실 등의 게임에 슬슬 질려서 오락도 그만둘까.. 하던 차에 캡콤의 걸작 대전격투 스트리트 파이터2를 만나게 된 것이 결정타였을까, 아무튼 그 때 시작된 내 전자오락과 함께 하는 삶의 방식은 지금까지도 끈덕지게 이어져 오고 있다.
..과거사를 적으려던건 아닌데, 아무튼 그로부터 약속장소 및 남는 시간을 부수는 곳이 되어준 전자오락실은 어느덧 내 주위에서 꽤나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중학교-고등학교 때 줄줄 꿰고 있던 오락실의 위치들은 남김없이 사라져 단 두 곳만이 영업을 계속하고 있고, 그나마도 썩 반갑지 않은 게임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가기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게 되어버렸다. 코나미의 비트매니아 이후 잠시 오락실의 대 부흥기를 맞이하고 그 유행이 식음과 동시에 오락실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중론이고,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 이후로 PC방의 창궐이 오락실을 모조리 흡수했다는 것이 진리가 되어, 내 주변에서 오락실을 점점 빼앗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서울 시내의 큰 오락실과, 어중간한 크기의 오락실의 업종 변경 때문에 경쟁자가 사라진 영세한 작은 오락실들이 골목을 지키고 있어 그나마 아주 섭섭하지는 않다는 작금의 오락실이 애달프달까 서글프달까...
친구들과 왁자지껄 몰려가 동전을 소비하던 대전게임과 다인용 난투게임, 고독한 승부를 즐기게 해주던 슈팅게임과 퍼즐게임,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체감형 게임들이 방과후의 나를 기다려주던 오락실의 존재가 내 추억들이 엷어져가는 것과 함께 자취를 감춰가는 현실이 섭섭하기만 한 요즘이다. 정말, 그 많던 오락실은 다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