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채기가 나온다. 휴지를 꺼내어 코를 풀고, 발 옆에 놓인 휴지통에 넣는다. 코를 훌쩍이다가, 문득 모니터 아래의 시계를 본다. 11시가 지난다. 일요일 밤의 11시는 괴로운 분수령이다. 이걸 넘기면 활기찬 월요일 아침이 멀리 떠나가고, 넘기지 않으면 하릴없는 클릭질이 허공을 가른다. 조금 망설이다, 기상청 사이트의 내일 날씨를 체크하고, 이내 ctrl+esc를 누른다. 그리곤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컴터를 종료시킨다. 모니터의 스
위치를 끄고, 모뎀의 스위치를 끄고, 스피커의 스위치마저 끈다.
하루 종일 방을 채우던 컴터 쿨러의 소음이 사라지고, 방에는 놀랄만큼의 정적이 찾아온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어 물을 한모금 마시고 불을 끈다. 자리에 누워 베개를 만지고 좋은 각도를 찾아낸 후 눈을 감는다. 고요하다. 아까 재채기를 한 탓일까, 코가 막혀있다. 호흡에 약간 걸리적 거릴 정도의 귀찮은 코막힘이다. 주말 내내 고행하는 스님의 심정으로 장을 달래두었더니 난데없는 코막힘이 찾아온다. 고요한 방에 코가 막혀 잠자리에 드는 느낌은 외로움을 떠올리게 한다. 눈물을 떠올리게 한다.
사소한 것에 의미부여를 하고는 그 의미에 감정이입을 하는 소심한 A형인지라, 어느날인가의 코막힌 밤을 떠올린다. 그때는 베갯잇도 젖어있었지만. 잠시 그 밤을 생각하다가, 곧 내일 할 일을 떠올린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이르게 집을 나서야 한다는 것, 아침에 출근하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것, 어떻게 이 속을 달래야 할까 하는 것.
나는 바쁘다. 주말을 한가하게 보냈으니 다시 바빠야 한다. 상념은 '쿨'하게 날려버리고, 아침 출근길을 생각하자. 내일 아침에도 나는 6호선 안에서 합포가하라를 달려야 하겠지. 어렵다. 합포가하라. 언능 클려하고 도꼬잇쇼-렛츠학교 질러야 하는데. 쯧.
- 우측 위는 인터넷에서 주워온 이니셜D 하포가하라 스테이지의 맵, 오른쪽은 공식홈에서 주워온 도꼬잇쇼-렛츠학교의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