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B'z 카페 라야의 운영진 존(koshi)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아침에 별 생각없이 들렀다가, 왠지 분위기 타서 끄적여 본다.
아울러 이 카테고리의 이름도 변경. 가끔쓰는 노래 가사로 만든 글들을 적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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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울 것 같았던 협상을 의외로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가벼운 마음으로 악수를 나눈 후 거래처 사무실을 나오자, 따사로운 맑은 날 오후의 하늘이 나를 맞아주었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것을 증명하듯 먼지 섞인 바람이 부는 거리를 지나쳐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휴대전화로 사무실에 조금 전의 결과를 알리고, 조금은 잰 걸음으로 주차장을 향했다. 평소 이곳에 올 때는 작은 사무실이라 사옥에 주차장이 없어, 길 건너편의 유료 주차장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조금 불편했지만, 결과가 좋았던 탓인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고 건너편에 무심히 눈길을 던졌을 때,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그녀가 눈에 띄었다. 그녀 주위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녀만이 크게 부각되어 보이는 착각이 들만큼. 이렇게 그녀가 눈에 크게 보이는 것은 새삼스럽게 아름다워진 그녀보다도 그녀 옆에서 그녀의 눈을 마주보며 다정스레 이야기하고 있는 핸섬한 남자 때문일 것이다. 지나간 시간 언젠가 그 자리에 서있던 것이 나였기에 내 눈은 그 광경을 이렇게 크게 잡고 있는 것이리라. 내 눈길은 길 건너편에서 이렇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미 과거의 존재가 되어버린 나를. 그리고 스쳐 지나가 버린 일들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서로 사랑하며 보냈던 그녀와 나지만, 이미 시간들을 기억 속에 접어두기로 한 것이 벌써 1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꽃 한 다발과 작은 선물과 촛불만으로 행복했던 언젠가의 뜨거웠던 추억들을 기억 속에 접어 넣어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식혀 가는 일을 쉽게 익숙해질 거라 생각했었다. 그녀를 놓아줘야만 했던 슬픔에 흘린 눈물만큼, 눈물 흘린 시간만큼, 그 슬픔의 크기만큼 곧 잊어버릴 수 있으리라고, 그렇게 익숙해 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짧은 상념과 복잡한 추억에 젖어 있는 동안 어느새 신호등은 바뀌고, 슬슬 혼잡함이 시작된 오후 시간을 알리듯 건너편에서도 이쪽에서도 인파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상념은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지만, 다리는 기계적으로 움직여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다. 처음에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았던 그녀와 내 발소리는 이내 주변 사람들의 발소리에 감싸이듯 섞여 곧 구별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몇 걸음 걷지 않아 그녀는 내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채 내 곁을 스쳐지나간다. 그녀를 놓아버렸던 순간을 후회하고 싶어질 만큼 아름다워진 그녀의 목소리는 멀어져가는 그녀의 모습과 달리 내 귓전에 남아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지금보다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한없이 내 마음에 가득 차 있던 그녀의 모습을 되돌려 주며 머릿속의 상념을 가슴속의 아련함으로 바꾸어 버린다.
지금은 이미 다 식어버려 그녀 없는 일상에 익숙해져 버렸다고 생각했던 나는 순간적으로 뒤돌아서서 그녀를 다시 한 번 불러 세워 시시한 일상이라도 떠들어 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된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그저 마음만이 초조하리만치 안타까워지고, 벌써 1년이 가까워 오는 과거 속의 이별이 아련해진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 속에서 고이고이 잠들어 가는 기억의 가운데, 그녀를 잃고 외톨이가 되어서도 이렇게 누군가를 격렬히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술기운을 빌어 소리 지르고 눈물 흘리며 원망했던 언젠가의 밤조차 이상하게도 아련한 추억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기분이 행동으로 바뀌는 일도 없이 그저 가슴의 떨림으로만 남아,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상기하게 되어 버린다.
지금은 이제 각각의 인생을 걷고 있다. 불러 세울 수 없는 그녀와 뒤돌아 보지 못하는 나의, 두 가지의 발소리가 길모퉁이에 사라져 간다. 나는 애써 고개를 흔든다. 내가 지금 해야할 일은,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어 사무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의 오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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