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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놀람으로 가득차 있다.
+   [열어보고 싶은 대가리]   |  2006. 3. 16. 18:25  

언젠가부터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여가 선용 중에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퀴즈가 있다면, 아마도 그 정답에 여행이 하나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여행. 언젠가부터 여행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이게 되어버린 것 같다. 계획을 짜고, 공부를 하고, 짐을 싸고, 집을 나서는 매 순간이 설레임으로 가득차게 되는, 그런 여행. 다른 이들은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르는 거리를 걸어다니는 느낌과, 그럼으로써 얻게 될 어떠한 종류의 놀람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세상은 놀람으로 가득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처럼 썰을 풀었지만, 사실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한다. 비행기 타고 날아가는 외국이라면 더욱더. 우리나라도 먼 옛날 호기롭게 떠났던 지방 순례를 제외하면 또 없다. 하지만, 내 소박한 여행은 중고물품 직거래를 위해 찾아가는 처음 가보는 서울 시내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군대에서 후임들을 놀리는 말 중 하나인 '서울이 다 너희집이냐?' 라는 말 속에서 굳이 뼈를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것... 그것은서울특별시에 살아도 서울의 구석구석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미지의 장소를 어떤 이유에서건 찾아가 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풍경이 나타나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다. 놀람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그 소박한 놀람이 감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뭐가 그리 신기하냐고 한숨을 내쉬고 콧방귀를 뀌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 소박한 놀람에서 느끼는 감동과 행복이 내 삶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면 즐거운 일이 아닐까? 어쩐지 쪼잔하고 소심한 A형적 사고방식이라고 비아냥 거릴지도 모르겠지만.
유럽에 가서 몇 백년도 더 된 건축물이나 예술품을 보면, 소양이 적은 사람일지라도 어느 정도는 놀라게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감동을 제대로 맛 보려면 아무래도 그 분야에 조예가 깊거나, 여행 전에 목적지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공부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푼 기대도 함께. 전혀 준비나 공부나 조예와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라면 앙코르 와트를 가고 디즈니 랜드를 간들 어떤 감동과 놀람을 남기고 돌아올 수가 있을까? 그냥 다녀왔다는 증거인 기념품과 디카안의 촛점 흔들린 사진들 외에.
여행을 가려면 공부를 하라는 요지가 되는 것 같은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놀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살자는 것 되겠다. 놀랄 수 있는 준비라는 말이 좀 우습긴 한데, 바꿔 말하면 사소한 것에 감탄해 보자는 이야기 되겠다. 사실 유명한 여행지에 가서도 막상 도착했을 때 그 소박함에 기가 차는 경우도 있고, 문헌을 읽고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해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여행에 대한 부푼 기대라는 말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그 모든 것에 놀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알아보기 힘들게 닳은 비석이라고 해도 그 비석에는 닳아온 세월과 손때가 묻어 있을 것이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절터라고 해도 한때 거기 웅장함을 자랑하며 서있던 영광의 반증이 바람에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 초라함에 실망하고 볼 것 없다고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럼으로써 놀랄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준비. 사소하고 작은 마음의 움직임에서 감동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햄스터가 굴리는 끝없고 지겨운 챗바퀴 같은 나의 일상도 항상 놀람으로 가득 차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발견한 하나하나의 놀람들은 내가 걸어가는 길의 역사가 되어 줄테고.우리네 인생이 언제나 거대하고 웅장하며 지극히 아름답고 수려한 디테일로 가득찬 일상이 되기 힘든 만큼, 어차피 안주하게 될 현실의 소소함을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 그것을 놀랄 수 있는 준비라고 해두고 싶다.
놀랄 수 있는 준비라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해 결국사소한 것에 대한 마음씀과,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공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감사. 뭐 그런 것이 아닐까? 퇴근 전에 갑자기 한가해 져서 이런 것을 쓰고 있는 지름신의 사도가 하는 생각과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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