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앰프를 열자, B'z가 OCEAN을 노래한다. 좋은 노래다. 여름을 예감하는 조금 서늘한 주말 오후에 듣기에도 나쁘지 않구나. 이 망할 비 때문에 일정이 엉망이 되었고, 일요일까지도 불투명해져 버렸다. 씁, 어쩔 수 없지... 하고 체념하기엔, 소중한 휴식이 황당하게 찾아온 것이 왠지 서럽고 억울하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이 정도에 우는 건 정신병자 뿐이리라.
문득 디카를 뒤져보니, 이런 사진이 나온다. 싱그러운 가정의 달 5월의 어느날, 문득 생각나 찍어보고 올려다 본 풍경이다. 이런저런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차용하는 이미지. 난 뭐한다고 사는 걸까나. 쌩뚱맞게 대지에 뿌리를 박은 시멘트 전봇대에 몸을 걸치고 이리저리 뻗은 전선들의 어지러운 궤적이, 내 삶의 궤적과 비슷한 것 같아 처량하다. 저 전선들이 어딘가와 어딘가를 어떻게든 이어주고 있듯이, 내 시간들도 어지럽게는 흐르더라도 제대로 어딘가에 나를 데려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때는 친구를 부르자. 퇴근길에 쉽게 들릴 수 있는 조금은 번화한 골목의 조금은 한가한 맥주가게에 들어가 간단한 안주를 벗 삼아 맥주를 마셔보자. 비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겠지만, 넥타이를 제법 피곤한 척 끄르며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고 자못 맛있다는 듯 맥주를 마셔보자. 그리고 마르고 딱딱한 안주를 우물거려 보자. 뭐, 이런게 나름대로 건전한 일상의 해소법이라면 말이지. 음... 문득 살을 뺀답시고 금주 선언을 했던게 언제였던가 하고 생각하다가, 이내 그만 둔다. 아무려면 어떠랴. 먹다 남은 것을 싸온 발렌타인 17년산 한모금을 쪼꼬렛 안주에 마시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지. 비가 망친 오늘 하루의 우울함의 진짜 원인 따위는 생각지 말자. 내일은 일요일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