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생각해 보면, 사랑은 하는 것이 이득이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손해인 것이다.
한 때 수많은 소년들을 귀신 사랑에 몰아넣은, 꺄아 귀신언니라는 만화가 있었다. 뭐... 언젠가부터 나온 정식 라이센스 판에는 아싸라비아 여신님(가칭)이라고 적혀있다고 하더라. 타이틀의 미묘한 차이는 신경끄시고, 아무튼 복받은 못난이 주인공이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었더랬다. 내용은 제법 흔한 스타일의 어린시절 트라우마. 확실히 100년도 못사는 인간의 애완동물들은 주인 등쌀에 오래 못 사는 것이 정석인지라 먼저 세상을 떠날 애완동물들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슬픔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믿는 사람 지금 손해보는 거다. 사랑은,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는 그 순간에 얻을 수 있는 벅찬 감정의 맥동을 느껴보고 싶지 않은가? 그 느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런것 필요없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따스한 온기를, 벅찬 감동을, 든든한 기분을 알면서, 그걸 잃는 순간의 상실감이 두려워 다시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자체가 인생의 이득이고, 사람으로 목숨을 얻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온 보람인 게다.
그래서 이렇게 잘난척 할만큼 내가 사랑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 수많은 사랑이 주변에 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처럼 나 또한 무언가를-누군가를 미워하고 씹기 바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대하고 웃기 바빠도 삶을 채우기 힘들텐데도. 오늘도 사랑이 충만한 하루가 되기 위해, 아침에 머리를 빗고(티는 아나지만) 거울을 보며 거울 속의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이젠 지겹다. 그렇다고 시커먼 사내놈들에게 사랑한다고 했다간 백이 브로크 될테니...
횡설수설 그만하고, 결론.
내 방 앞을 지켜주는 강아지 진구를 조금 더 사랑하자. 출퇴근 시간의 든든한 동반자 프습을 사랑하자. 그리고 언젠가 나를 사랑해 줄 누군가를 위해, 나를 조금 더 사랑하자. 손해 보는 것은 더 이상 싫으니까. ...라고는 해도, 뭐가 바뀔까... 이니셜D 전질 지른거나 일단 한 번 더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