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에 별로 뜨겁지 않은 것을 뜨겁다고 적은 4번재 기획 이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가 문득 생각나서 적어본다. 이제 2005년도 10일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고. 나를 뜨겁게 만들었던 2005년의 5번째는 바로 '건프라'가 되겠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아주아주 꼬마 시절,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내 인생 최초의 프라모델은 국산 '마징가Z'였단다. 지금은 개발되어 없어진 동네의 국민학교 앞의 문방구(당연히 지금은 동네도 국민학교도 문방구도 모조리 없다) 앞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모시고 가서는, 마징가를 가리키며 말똥말똥 쳐다보더란다. 그 때 사 주신(당연히 기억은 안난다) 마징가 프라모델은 꼬마였던 나에겐 난이도가 높았던지 홀랑 말아먹었고, 결국 우는 나를 달래기 위해 같은 걸 새로 하나 사와서 어머니가 가르쳐주며 만들어 주셨단다. 그리고 국딩시절 주머니에 동전만 생기면 지르고 지른 프라모델들을 자루로 버린 것이 열댓포대... 돌아가신 할머니는 당신 살아생전 이따금씩 그 이야기를 하시며 웃으시곤 하셨다. 세월이 지났으니 웃으신 것이었지만서두.
아무튼, 취미에 인생의 상당 부분을 투자하고 있는 나에게 건프라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진 취미의 하나이기도 하고, 새삼스럽게 2005년에 뜨거웠던 것이라고만은 말하기 힘들다. 새로운 건담의 시리즈가 나오면 최소한 주역기체 하나씩은 꼭 구입했었고(평성 건담에 들어와서도 주역기체 하나씩은 샀었다) 2003년의 SEED 킷은 또 어지간히 질러대기 시작했으니. 하지만 2005년의 건프라는 조금 각별히 뜨거웠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 전에 포스팅한 케로로 중사의 영향으로 침략을 받아 건프라에 조금 더 매진하게 된 것도 있지만, 내 나름대로 건담마커를 사용한 부분 도색에 익숙해 진 것과 건프라를 함에 있어서의 내 나름대로 정체성을 확립한 점, 그리고 주력 취미 종목이었던 게임을 누르고 주력 취미 종목이 된 점 등을 2005년의 뜨거웠던 것으로 건프라를 선정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만드는 것들이 뭐나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만족인 셈이니 그냥 그러려니 해주면 좋겠다.
2005년 최초의 완성작은 구판 RGM-79 GM 킷을 활용한 건담 대 제타건담 버전 지온군용 GM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름대로 대미를 장식할 허접한 개조작을 진행 중인데 과연 올해안에 끝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년에도 또 그 이듬해에도, 언젠가 내게 다가와 줄 내 분신에게 물려줄 수 있는 좋은 취미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년엔 SEED도 SD 무사건담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새로운 킷이 얼마나 발매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