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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방문기 - #8[2005년 12월 26일_마호로바의 밤]
+   [멀리 나들이]   |  2006. 3. 26. 18:17  

10. 온천 호텔에서의 밤

호텔방에 준비되어 있던 유가타와 가운을 입고, 어슬렁어슬렁 탕으로 향했다. 호텔 마호로보의 탕은 아쉽게도 남녀 혼탕이 아니었고 윗층과 아랫층을 하루에 2번 교대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어느 층이건 노천탕과 실내탕(이랄까..)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윗층은 하늘이 보이고 정말 노천탕이라는 느낌이 나는 반면 아랫층의 노천탕은 야외라는 느낌은 나지만 지붕으로 가려져 있어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차이점을 가진 두 층을, 낮에는 윗층이 남탕, 아랫층이 여탕, 밤에는 또 반대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뭐.. 대강 그 의도는 짐작이 갔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방식이었다. 나와 동생이 탕에 들어갔던 시간은 밤이었으므로 아랫층이 남탕인 시간이었다. 일본식으로 되어 있는 장막을 헤치고 들어가면 마음에 드는 자리에 가서 바구니 안에 벗은 옷을 넣어놓고 가는 식이었다.

 나는 당연히(랄까..) 178번 바구니의 자리에 가서 유가타를 벗고, 탕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실내탕을 접하게 되는데, 실내탕은 유황냄새가 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대중탕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한국식
때밀기 코너도 준비되어 있었고, 약간 종류가 많은 탕에 각각 설명이 붙어있다는 점이 특이했달까. 하나씩 몸을 담가본 뒤, 문을 열고 노천탕으로 나가자 놀랄만큼 차가운 바람이 온 몸을 때렸다. 뜨끈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갑자기 밖의 공기가 닿았으니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예상 이상으로 차가운 바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두운데다가 수증기가 계속 올라와 불빛들이 뿌옇게 굴절되는 중에도 아무튼일본식으로 비부를 수건으로 가리고 탕을 찾아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보니 물 위로 내놓은 얼굴과 어깨는 조금 추웠지만 탕에 담근 몸의 열기가 느껴져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식는 머리카락과 어깨를 계속해서 수건을 물에 적셔 덥혀주긴 했지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몸이 나른해지다 못해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해, 몸을 닦고 밖으로 나왔다. 유가타를 걸쳐입고 호텔 방에 들어와 지갑을 챙기고, 이번에는 1층에 있는 기념품 점을 둘러보았다. 기념품점에서는 마호로바의 특색있는 기념품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거의 없고, 노보리베츠 만의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아이템들도 많이 있었다. 굳이 특색을 찾자면 온천에서는 어지간하면 다 판다는 온천 만쥬정도.

 그다지 살 것이 없다는 생각에 안주거리와 군것질거리를 조금 더 산 후 지하에 있는 오락실에 가 보았다. 베가장군이 올라오는 스트리트 파이
터 두더지 게임과 북두의 권 파칭코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재밌어 보이는 것이 없어 태고의 달인을 한게임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TV를 틀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보니, 스마스마 10주년 스페셜을 하고 있었다.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명장면 스페셜이라는 문구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동생이 준비한 위스키와 안주, 컵라면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지 못한 아쉬움과 각자의 진로, 과거, 미래, 취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다가, 스마스마가 끝날 때 쯤 동생녀석이 피곤하다며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 다시 한번 호텔을 휘적휘적 걸어다녀
보았다.홋카이도의 밤은 온천호텔도 마찬가지였는지, 한국에서라면 아직 복작거릴 법한 시간인데도 호텔 복도는 썰렁했다. 사람의 기척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 흐릿한 조명의 복도를 어쩐지 쓸쓸한 기분으로 돌아다니다가, 괜시리 음료수 하나를 자판기에서 뽑아마시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지인의 집이 아니면 아주 싼 여관이 아니면 유스호스텔이나 비지니스 호텔만을 다녀봤기 때문에, 리모콘으로 조명을 끄고 쾌적한 공기 조절장치가 돌아가는 침대에서 유가타를 입고 자는 것이 조금 신기하고 어색한 느낌이었다. 동생의 유학 덕분에 이런 곳도 와보는 구나.. 하는 감탄과, 이제 여행의 절반이 지나 곧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아련히 교차하는, 편안하면서도 쓸쓸한 잠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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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005년 12월 27-28일_삿포로로, 그리고 한국으로]에서 계속. 돌아온지 만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마지막회에 대한 예고를 쓰고 있다.. 으음... 아시겠지만, 그림은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다. 볼만한 사진들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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