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지옥곡-2
눈발이 약해졌다가는 곧 강해지는 기세를 반복했기 때문에 좀 더 안쪽으로 올라간다는 것이 조금 불안하고 곤란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이동할 수는 있었다. 약사여래에 잠시 묵상을 올리고 오오유누마를 거쳐 안쪽에 있는 오쿠노유마로 향했다. 사실 오오유누마는 여름철에 가까이 가서 올라오는 수증기와 넘쳐나는 유황을 직접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가는 길이 쌓인 눈 때문에 위험한 탓인지 출입금지가 되어 있었다. 나는 아예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아쉬워하는 동생의 모습에서 꽤 볼만한 풍경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할 수가 있었다.
눈 쌓인 오솔길을 따라 오쿠노유마를 향해 올라가는 길에는,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과 눈발 탓인지 되돌아 나오는 몇 명의 관광객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올라가는 사람은 나와 동생 뿐이었는데, 문득 어두워지려는 채비를 하는 하늘과 흩날리는 눈발, 눈 덮인 오솔길의 풍경이 무척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중간에 지옥곡이라고 씌여진 휴식처 같은 광장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을 뿐더러 의자와 공터가 모조리 두텁게 눈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내심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된다는 동생의 설명에 힘을 내기로 하고 다시 오솔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쌓인 눈 탓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수많은 산불조심 표지와 안내문들을 이정표 삼아 10여분을 오르자, 마침내 오쿠노유마에 다다를 수 있었다. 홋카이도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경치라는 동생의 자랑에 걸맞게, 정상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가진 작은 화산과 그 아래에서
김이 소용돌이쳐 오르는 온천 호수의 경치는 확실히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신기한 경치였다. 오쿠노유마도 사실 자동차까지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아래에 있고, 가까이가서 뜨거운 온천물에 탁족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했지만 도보로 내려가는 길의 눈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 위험했던 탓에 가까이 가 보지는 못하고 그저 눈과 카메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얼마나 머물렀을까, 하늘이 조금 더 어두워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고 눈발도 갑자기 격해지기 시작해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아오는 발걸읆을 옮겼다. 중국 속담에 가는길의 100리는 오는 길의 10리라고 했던가, 돌아나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 한결 편하게 느껴졌다.
눈발을 가르며 다시 호텔가로 내려오는 길에 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점심을 가볍게 빵으로 때우고, 호텔에 도착해서 먹은 만쥬와 녹차가 아침식사 이후 끼니의 전부였고 지고쿠다니를 찍고 내려오다보니 허기가 밀려오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게다. 메뉴는 홋카이도에서 꼭 먹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인 문차다 어깨부러트린 망놈...이 아니라, 징기스칸을 시켰고, 동생은 지고쿠다니 특제 냄비우동으로 골랐다.
징기스칸은 노린내가 나지 않는 양고기와 숙주나물을 볶은 일종의 불고기였다. 다른 찬 없이 간단한 야채와 쌀밥을 함께 먹었는데, 별도로 시키는 쌀밥의 가격이 결코 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밥 자체가 맛있었고 난생 처음먹어보는 징기스칸이라 그런지 우적우적 잘도 먹을 수 있었다. 동생이 시킨 냄비우동은 사실 뜨거운 돌솥우동이었지만, 뜨거운 온천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을 재현했다고 하는 아이디어 마케팅(이라곤 해도..)이 돋보이는 네이밍 센스였다. 한가하면서도 여유있게 운영한다는 느낌을 주는 가게에서 느긋하게 배를 채우고,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안주거리와 컵라면을 골라 호텔로 돌아갔다. 드디어 온천에 몸을 담글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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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05년 12월 26일_마호로바의 밤]으로 계속
- 동생이 여름에 다녀온 노보리베츠의 포스팅을 트랙백.
-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커진다고 한다. 길어야 앞으로 2번의 포스팅으로 끝날 듯. 고만 질질끌고 언능 마무리 지어야할텐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