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와 망년회. 같은 의미로 쓰이긴 하지만 어감의 차이는 현저하다. 송년회라고 하면 어딘지 모를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하고, 망년회라고 하면 흥청망청 망가지기 위한 모임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요즘은 송년회라는 말을 더 널리 쓰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지만, 흥청거리는 망년회 쪽이 어쩐지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은 그 근원을 찾을 수 없지만 보다 선명하다.
저물어가는 2005년도의 첫 송년회는 올해 뜨거웠던 것에 포함되는 서바이벌 모임의 망년회였다. 팀 블랙라군의 망년회로, 9명의 인원이 모여 복작복작 즐거운 자리를 가졌더랬다. 회비를 걷어 간단히 술과 요리를 시키고, 갖은 음담패설을 일삼으며 먹거리를 마치고 위닝과 인터넷, 잡담등을 즐기다 느즈막히 노래방에서 버닝, 돌아오는 길에 12시 넘어 김밥과 라면을 먹고, 숙소로 쓰인 블랙라군 팀장님의 집에서 좀더 노닥거리다 한명씩 전사... 라는, 다분히 소비지향적에 남는 것 없는 전형적인 망년회를 가졌더랬다.
사실 모임이란게 그렇다. 서양처럼 근사한 파티문화에 익숙한 것도 아니고, 주머니에 돈들이 많아 비싼 술 거하게 빨고 단란한 술집으로 2~3차를가거나 므흣한 안마를 받으러 가는 등의 어른 놀이를 즐길 여건도 안되고..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그럭저럭 건전한 청년들이 모여서 논다는 것이이와 같은 형태를 탈피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만 이러고 논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먹고 마시고 소리지르고노는 전형적인 한국적 모임을 가진 후기를 끄적거리는 이유는 그 모임이 그저 즐거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임을 마치고 오후가 되어 스멀스멀 자리를 걷고 일어나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졸업한 대학을 가로질러 전철역으로 향하게 되었다. 내가 졸업한, 말하자면 모교는 90년대 중반까지 데모쟁이들의 학교라는 별명을 달고 있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족벌사학-비리의 온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런, 나름대로 S대라고 우기는 그런 학교다.(이 정도면 알겠지.) 모교욕을 하면서 내 얼굴에 침을 뱉고 싶은게 아니라, 아무튼 교정을 가로질러 정문의 전철역으로 향하는 오후 2시가 지난 겨울날 일요일은, 무척이나 한가로운 낮은 태양과 그 햇빛이 만들어 내는 뜻모를 눈부심, 그리고 차가운 공기와 한적한 적막이 있는 시간이었다. 적막하고 한가롭기로 따지면 본인의 자택만큼이야 하겠느냐만서도,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자그마한 대학교의 겨울을 지나는 교정이 가진 공기의 느낌이란 것은 원서를 넣으러 온 고3 수험생과 대학생이 아니면 맛보기 힘든 감회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그 교정에서 군입대를 경계로 두 번의 사랑을 나누었고 평생의 지기를 얻었고 사회도 아니면서 무척이나 더러웠던 꼰대들을 보게 되었던 나에겐, 곁에 함께 했던 귀가길의 동료들과 함께 기묘한 향수에 잠시 젖을 수 있었다.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지금은 거의 맛볼 수 없는 한가한 겨울 오후 교정의 공기, 이것이 2005년 첫 송년회가 내게 준 송년 기념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감상주의인 걸까?
돌아오는 길에는 아직 남아있는 멸종 위기의 천연 기념소, 헤홍오락실에서 간만에 대전을 즐기고, 흔들리는 전철 속에서 시덥잖은 농담을 함께 했다. 그렇게 소비 지향적으로 흥청거리며 지나간 주말이었지만, 내게는 오후의 낮은 태양이 비추는 여유로운 교정같은 주말이었다. 다음번 망년회는 어디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