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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의 어느 점심시간
+   [이야기]   |  2005. 10. 6. 10:37  

비가 이어지면서 독일이나 영국을 연상케 하던 날씨의 9월이 지나고, 10월이 되었다. 갑작스레 차가와진 공기와 새파란 하늘은 내 몸과 눈을 시리게 하며 가을을 알린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더이상 뜨겁지 않은 점심시간의 공기가, 직장인의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인 점심시간을 도시락과 옥상으로 채우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그 요구에 충실히 응하여, 회사 근처의 편의점으로 달려가 별로 몸에는 좋을 것 같지 않은 인스턴트 도시락을 사왔다. 인스턴트라고는 하지만, 나를 부르는 가을 하늘을 마주하고 먹는데야 몸이 반란을 일으키기야 하랴.

이 근처에서 도시락은 별로 인기가 없어, 냉동비빔밥과 삼각김밥, 냉동식품, 그리고 주스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뭘 먹더라도 살이찌는 계절 가을이니.. 좀 과식하는 느낌은 있지만 괜찮겠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공기와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가을 하늘과 햇살이 함께하는 옥상에서의 점심식사는 매우 맛있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딱딱한 회사 생활 속에서 학창시절의 점심시간을 조금 흉내내는 것 같아 특별한 맛이 있었다. 이런저런 지름라이프로 인해 항상 저렴한 점심식사를 하긴 하지만 가을 하늘이라는 기간한정의 양념이 함께 해주는데야 무슨 반론이 허용될 것인가.

나는 하늘이 좋다. 하늘이라는 이름의 연예인들은 단 한명도 좋아하지 않고 관심도 없지만, 구름낀 날에도 그 뒤에 가려진 푸른 하늘을 생각하며 고개를 든다. 태양도 별도 구름도 하늘이라는 배경이 있어야 그 아름다움이 나타나는 법. 겨울이 되면 온도만큼 시리게 푸르러질 하늘이 기대가 되고, 그 하늘을 달리는 바람과 구름에 까닭모를 설레임을 느끼고, 태양의 커다란 은혜에 이따금 감사하고, 달과 별의 빛에 숨막히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내 안의 덜자란 마음의 조각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상처입은만큼 작아지고 어른의 껍데기를 쓰고 어른인 척하는 내 속에서 아직 하늘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여유가 남아있는 지금이 다시금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바람이 나를 옥상에 오지 못하게 하기 전에, 이 기간한정의 하늘을 즐기기 위해 이따금 도시락을 손에 들고 옥상에 가야 할 즐거운 필요를 느낀다. 언젠가 나의 기억 속에서, 학창시절의 점심시간을 즐겼던 지나간 시절의 친구들의 오늘 점심이 맛나고 풍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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