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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2005. 7. 12. 10:21  

비 (2004년 5월 28일)

나는 비가 싫다. 음습한 공기가 교통사고 이후 지끈거리는 무릎의 통증을 더 하는 것이 싫다. 가느다랗고 힘없는 머리카락이 습기를 머금어 멋대로 꼬이는 것이 싫다. 질척질척하고 더러운 물이 튀기는 거리를 걸어야 하는 것이 싫다. 가뜩이나 짐이 많은 나의 행로에, 우산이라는 방해물이 끼어드는 것이 싫다. 착 가라앉는 분위기가 싫다. 바지에 물이 튀겨서 옷을 버리는 것이 싫다. 그렇게 젖은 옷이 맨살에 감기는 것이 싫다. 나는 비가 싫다. 무척 싫다.

그렇지만, 비가 처마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만큼은 좋다. 우울한 기분이 된 저녁날, 조금은 쓸쓸한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서 위스키를 홀짝거리며 청승을 떠는 것이 좋다. 청승맞게 개폼 잡는 것 밖에는 되지 않지만, 그 개폼이 좋다. 다만, 내 인생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추상적인 서글픔을 빗소리 반주에 맞춰 내딛어 가는 것이 좋다. 이렇게 생각하면, 비도 아주 쓸모없지는 않다.

세상은 멋대로 돌아간다. 원하지 않아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이 오고,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를 식히는 비가 내린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에 집에 돌아가다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김과 쏟아붓는 빗물, 요란한 소리를 내는 우산, 그리고 아스팔트가 뜨거운건지 비가 좋은 건지 아무튼 날뛰는 개구리들에 둘러싸여 있노라면 아아, 과연 나는 살아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이 든다. 그리고, 멋대로 돌아가는 이 세상속에서 내가 두 다리를 내딛고 걸어가고 있다는 묘한 실감도 든다.

멈추지 않는 세상속에서 가슴을 펴고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일까, 어려운 일일까. 인생은 걸어가는 길이고, 뛰어가는 코스이고, 달리는 랠리이고, 헤엄치는 호수다. 그리고, 빗길을 내달리는 가난뱅이 소년이다. 모든 장소는 멈추지 않고, 그 장소 위에 서있는 나도 멈추지 않는다. 가슴을 펴고, 턱을 당기고, 급한 척 당당한 척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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