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원래 있던 모임이 당겨져 홍대에 갔다. 조촐한 모임을 지향했고 또조촐했지만, 이번의 목적이 되어버린 식도락 기행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저녁시간에, 약속시간을 훌쩍 넘겨 일행이 모이자 곧 목적지로 이동을 했다. 방구쟁이(가칭)라는 라이브카페의 윗층에 위치한 한 야키도리집이었다. 이곳의 요리들이 일품이라는 정보에 일단 야키도리를 시켜보았다... 야키도리라고는 해도, 결국은 닭꼬치였지만.
양에비해 입이 많다보니, 젓가락으로 집고 살살 돌려 고기를 빼내어 모아둔 사진. 뭐, 결국 닭은 닭이긴 하지만 소스나 파의 익힌 정도가 흔한 닭꼬치와 다르다 보니 꽤 괜찮은 맛이었다. 가격에 대해서는.. 묻지 마시라.
닭꼬치와 함께 시킨 볶음밥(꽤 맛있다. 느끼하지도 않고.)으로 요기를 하고, 가볍게청주를 마시기 위해해물탕과 익힌 고등어, 그리고 마늘 구이를 시켰다.
익힌 고등어는 뭘 어떻게 한건지 비린느낌이 거의 나지 않았고, 마늘구이도 황당해 보이는 센스와는 달리 무난하게 집어먹기 좋은 안주였다. 매운맛 따위는 전혀없고. 그러고 보니 이영애가 히트시킨 전쟁사극 대장군에서 마늘 안먹는 할매 버릇 고쳐주는 에피소드가 있었던가. 암튼 위에도 좋은 마늘이라니 술안주로는 괜찮다 싶다. 곁다리로, 이곳의 기본 안주.. 속칭 스끼다시로는 간장에 조린 닭똥집-모래주머니-와 락교가 나온다. 락교를 좋아하는 나에겐 너무 좋은 곳인.. 음...
이 곳에서 마지막으로 시킨 해물탕. 새빨갛고 얼큰한 우리식 해물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담백한 가운데 살짝 괴롭히는 느낌의 매운맛과 해물들의 맛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동석한 전원이 '맛있다!'를 연발했으니. 청주를 좀 더 먹고 싶었지만, 시간과 자금과 다음 행선지의 압박으로 아쉬운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했다. 참고로 토요일 저녁 라이브카페의 흥분이 전해져 오는 바닥도 재밌는 느낌이었다. 그러고보니 시덥잖은 가요들이 나오길래 일본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더니 키로로 스페셜 앨범을 틀어주더라.. 담번에 갈 기회가 있으면 CD나 한장 구워다 줘야겠다..
2차로는 독특한 센스의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작은 찻집에 갔었는데, 호가든-카스-하이네켄등을 한병씩 시켜놓고 노가리만 까다 나왔다. 다시 찾아가라면 절대 못 찾아갈 것 같다.. 쓰다보니 기억나는 것 같기도.. 음...
3차로는 역시 상당히 독특한 음식집을 찾아갔다. 얼핏 보면 해괴한 중국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는 가게였는데, 직접 손으로 쓴 차림표와, 조금 쌩뚱맞은 미러볼, 벽화 등 재밌는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는 가게였다. 시킨 요리는 오징어 순대와 보양한방갈비찜(맞나..?), 그리고 이곳 특제 죽사춘인가.. 하는 술이었다.
오징어 순대. 사실 귀찮아서 그렇지 생오징어 한마리 가지면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다. 안에 볶음밥을 채워먹어도 괜찮긴 하지만. 아무튼 한입크기로 썰려 나오면서 오징어 특유의 맛을 많이 살린(취향 좀 탈 것 같은) 요리였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맛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 곳의 감탄사는 이놈이 다 먹었다. 뼈가 다 삭을 정도로 폭 고아낸 갈비찜(탕?)인데, 괜찮은 느낌으로 부드럽게 씹히는 뼈와 그와는 다르게 육질이 살아있는 고기, 버섯과 피망이 어우러진 진국이라 할 수 있는 국물, 2~3명이면 푸짐할 것 같은 양이 빚어내는 하모니가 좌중을 압도했다. 건더기도 건더기지만 특히 국물이 좌중을 휘어잡는 그 맛이란.. 쩝쩝.
이 곳에서 시킨 술은 직접 담궈 봉인한다는 죽사춘(맞나?). 저 뒤에 희미하게 찍힌 대나무통에 새로 구멍을 뚫어서 따라먹는 술인데, 그 방법도 방법이지만 술의 향과 맛이란 참.. 그것이.. 쩝쩝.. 음..
만약 아가씨를 데리고 돌았으면 금액이 훨씬 덜드는 코스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가격이라는 면에선 결코 싸고 맛난 집들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황당하게 비싸고 맛없는 집들도 아니고, 저만한 가격을 지불하고 먹음에 전혀 거리낌이 있을 수 없는 맛을 제공하는 집들이라고 해야하나.. 배를 채우러 가기보다, 적당히 요기를 하고 술 한잔과 함께 즐기기에 매우 알맞는 요리들을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집들이었다. 아쉬움을 가지고 홍대 언덕을 내려오면서, 밤을 불사르러 올라오는 전투태세에 돌입한 헐벗은 처자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침을 훔쳐야 했던 것도 대폭 플러스..
그대, 주머니가 비지 않은 밤, 함께 홍대에 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