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보 역은 오오아사역과 같은 평범한 역이었다. 좀 신선했던 것이라고 하면 나에보역 자체 보다, 가는 길 중간중간의 벽이나 다리 교각등에 그려놓은 그래피티들. 꽤 많기도 했고, 퀄리티도 좋아보였으며 일부러 그런 것을 장려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상당히 신선한 느낌이었다. 나에보 역 자체는 평범한 작은 역이었다. 내가 들렀던 모든 역이 그렇듯이.
역을 나와, 대충 지도를 보고 동생이 방향을 잡아 10분 정도 시내를 걸었다. 육교를 하나 건너고 큰 쇼핑센터를 하나 돌아, 얼핏 오래된 교회당 건물처럼 보이는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 도착하게 되었다. 처음 인상은, 그다지 맥주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건물이라는 느낌. 건물 앞에 오크통을 쌓아 글씨를 써넣은 구조물이 있었는데, 뒤에 설명을 듣고 안 것이지만 이것은 일본 개화기에 삿포로에 처음 맥주 공장을 세웠을 때 만들어 놓은 것을 재현한 것이란다. 당시 맥주라는 음료가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짐이랄까 광고랄까, 그런 글씨를 좀 알아보기 힘든 방향으로 적어놓았다고 한다. 글씨 중에는 현대 일본어에는 쓰지 않는 글자들도 있어서 전혀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눈 덮힌 맥주 박물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안에 들어가 보니 가이드를 따라 투어를 돌면 무료 사진 인화 이벤트를 한다는 말
에 서둘러 3층에 올라가 투어에 참가했다. 예전에 교토에 갔을 때도 유스호스텔근처의 신사에 가서 설명을 듣고 놀다 오는 투어에 참가했던 기억이 있어 왠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투어 자체는 맥주 박물관 3층에 설치된 전시물들을 한바퀴 돌면서 처음 일본의 개화기 당시 맥주를 도입한 사람들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해서 맥주가 일본에서 국민 음료로 정착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에서 특히 삿포로 맥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개화기 당시 얼음을 구하기 쉬운 삿포로에 공장을 세우고 맥주를 만들던 과정을 묘사한 미니어처 디오라마였는데 만드는 사람들을 전부 귀엽고 단순한 캐릭터로 만들어 두어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삿포로 맥주의 별은 삿포로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북극성을 의미한다는 것도 여기서 처음 알게 되었다. 투어의 마지막에 가이드 누님에게 부탁해, 개화기 당시 독일에서 들여와 2003년에 철거했다는 거대한 맥주 가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내가 독일 제품을 취급하는 회사에 다녀서 하는 말이 아니라, 독일 사람들이 물건은 견고하게 제대로 잘 만든다. 흠흠.
3층에서 모든 관람을 마치고 나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내려오자, 삿포로 맥주의 역사와 함께 발매되었던 맥주를 비롯한 관련 상품들의 전시가 있었다. 100년도 더 전에 나온 제품들을 보존해 둔 것들도 그렇지만, 스타워즈등 시류에 영합한 컵이나 보틀 등의 관련 아이템들이 보여주는 역사와 시대상이라는 것은 가벼운 주류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맥주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넓게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2층 전시품의 마지막에 현재 삿포로 맥주에서 발매하고 있는 제품들을 보기 좋게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1층으로 내려오자, 기념품점과 생맥주를 파는 바가 있었다. 기념품 점은 맥주 박물관에 있는 기념품점이라고 단정짓기에는 꽤 다채로운 아이템들을 팔고 있었지만 그리 끌리는 것은 없었다. 맥주를 파는 바는, 일단 200엔 짜리 중간짜리 컵 또는 400엔 짜리 작은 컵 3종류로 구분된 쿠폰을 파는 자판기에서 쿠폰을 구입해서 바로 가져가면 바에서 바로 생맥주를 컵에 담아 맥주용 크래커 한봉지와 주는 식이었다. 뒤에 드럼매니아 혹은 기타프릭스가 한 크레딧에 200엔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가격이었다.
맥주는 그냥 삿포로 맥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발매되고 있는 여러가지 맥주 종류들 중에서 고르는 식으로 되어 있었다. 나와 동생은 동생의 추천으로 200엔짜리 삿포로 클래식 한컵과(상당히 맛있다), 삿포로 흑레이블(레이블은 검은 색이지만 흑맥주는 아니다.), 에비스(장사치의 신이라는 아저씨로, 여기서는 맥주 브랜드) 흑맥주(진짜 짱 맛있다...), 개화기 당시 재현(처음 맥주를 들여왔을 때 만들던 방식을 재현하여 만든 맥주. 조금 밋밋하지만 뒷맛이 깨끗하다-이상 사진 순서대로)를 주문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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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토탈 600엔이라는 가격에 비해 맥주의 맛이 매우 좋았고(캔도 맛있지만 역시 생맥주에 비할바는 아니다) 한적한 크리스마스 낮의 바의 분위기도 행복했으며 삿포로 캔 모양의 구조물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어 무척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벼운 낮술을 맥주로 즐기며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망중한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아쉬움을 털며 점심식사를 하러 이동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