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99)
이야기 (33)
식도락 (11)
구암뿌루와 (20)
전자오락 (29)
죨리매니아 (4)
활동그림들 (13)
노래 (33)
아무튼 문장을 쓴다 (5)
멀리 나들이 (9)
열어보고 싶은 대가.. (16)
펌질 혹은 바톤 (26)
폐기문서함 (0)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 Today :
+ Yesterday :
  

 

 

 

앵두나무집 총각
+   [이야기]   |  2006. 6. 24. 22:09  

..이라는 것은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도의 어느 곳. 그 중에서도 개발 제한에 묶여 아주 오래된 집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른바 전원주택이다. 교통편이 좋지 못해 시내로 외출하기가 좀 귀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출퇴근은 할만한 그런 거리에 있는 집이다.

우리집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고, 내 방 앞으로 오는 길에는 앵두나무가 있다. 언젠가 한 처자가 그 앵두나무를 보고 나를 앵두나무집 총각이라고 해 주었다. 그보다 전의 한 처자는 나를 농촌총각이라고 불렀더랬다. ...아무튼, 내 방 앞의 앵두나무는 내가 이 집에서 살아온 15년 넘는 세월동안 매년 봄에 꽃을 피우고 초 여름에는 열매를 맺어왔다. 신 것을 잘 못 먹고, 과일도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태어나서 이제까지 먹은 앵두를 모두 합쳐본들 500알이나 될까 싶다. 하지만, 먹지 않아도 앵두는 내게 계절을 알리는 하나의 신호이기도 했고 또한 나를 부르는 호칭의 하나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앵두처럼 빨갛고 작고 귀여운 인간인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 못하긴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동네는 이제 곧 개발에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지만, 동네 전체를 파고 메우고 해서 아파트 단지와 공원을 만든다고 한다. 뭐... 그런 이유로 은행나무와 앵두나무가 지켜주는 정든 이 집에서 내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넉넉히 잡아도 1년이 남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1년 뒤에는 서울 시내 어딘가의 자취방에서 인터넷을 하게 될 것이고 이미 그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정리해 두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은 그렇게까지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아니기도 하고.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나가보니 문득 빨갛게 익은 앵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앵두를 보자, 앵두나무집 총각이라는 잊혀졌던 호칭이 생각이 났고, 뒤이어 이 앵두를 볼 수 있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오늘은 장마니 뭐니 하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기분좋게 개인 맑은 날씨여서 내 초라하지만 자랑스러운 똑딱이가 기분좋은 사진을 만들어 주었다.

저 빨갛고 통통한 앵두를 보는 것이 얼마나 남았느냐 하는 생각보다, 오늘은 문득 앞으로 나를 앵두나무집 총각이라고 불러줄 사람은 새로 생기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쓸쓸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던 앵두나무들이 문득 새삼스레 반갑고 또 고마운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말해도 앵두는 몇알 먹지 않겠지만, 내 짧은 삶의 절반 이상의 봄-여름의 가까이에 있었던 앵두나무에게 문득 미안해지기도 한다. 오늘의 아침 햇살이 상쾌했고 또 빨간 앵두의 존재를 일깨워 준 것에 감사한다. 오늘 하루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내일 하루가 휴일이라는 것에 감사한다. 여러 모로, 감사한 하루였다. 내일도 감사할 일이 많이 생기는 하루가 되기를. 앵두나무집 총각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7월이 되었습니다.  (12) 2006.07.01
간단히 돌아보는 근황  (16) 2006.06.28
또 근황...  (12) 2006.06.22
지난 주 근황 정리  (24) 2006.06.18
짧게 적어보는 근황 7 가지  (18) 2006.06.05

 
 
        

shikishen's Blog is powered by Da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