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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어보고 싶은 대가리] | 2005. 10. 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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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약속을 한다. 그중 만남을 가지기 위한 약속을, 아마 지금 젊은이들은 가장 자주 하지 않을까. 나 역시도 그러한데, 이 만남에 대한 약속 시간이라는게 사람마다 다르다. 아무리 표준 위성시계가 전달해 주는 동일한 시각의 휴대폰을 어지간한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다 하여도, 시간에 늦거나 일찍 가거나 하는 경우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이런 세상살이의 평범한 조건 때문에, 약속장소는 혼자 기다리게 되더라도 덜 심심한 장소를 고르게 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고, 나-혹은 내 지인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전자오락실이었다. 전자오락.. 이런 말 요즘은 진짜 아저씨들도 잘 안쓰는 말이 되어버렸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청소년 두뇌 개발, 스트레스 해소라는 문구로 장식된 전자 오락실이 동네 골목골목마다 존재했던 것이 불과 10년 안팎의 과거일이다. 나는 이 전자오락에 빠지게 되어서 인생을 그르친 - 건지 어떤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 케이스로, 국민학교 6학년 때까지 오락실에 가면 모두 다 깡패인 줄 알다가 친구들 따라간 오락실에서 만난 수퍼마리오3로 인해 여가시간의 방향을 급선회시킨 과거를 지니고 있다(왠지 거창하군). 중학교에 들어가서 보난자 - 톤마의 모험 - 파이널 파이트 - 다크실 등의 게임에 슬슬 질려서 오락도 그만둘까.. 하던 차에 캡콤의 걸작 대전격투 스트리트 파이터2를 만나게 된 것이 결정타였을까, 아무튼 그 때 시작된 내 전자오락과 함께 하는 삶의 방식은 지금까지도 끈덕지게 이어져 오고 있다.
..과거사를 적으려던건 아닌데, 아무튼 그로부터 약속장소 및 남는 시간을 부수는 곳이 되어준 전자오락실은 어느덧 내 주위에서 꽤나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중학교-고등학교 때 줄줄 꿰고 있던 오락실의 위치들은 남김없이 사라져 단 두 곳만이 영업을 계속하고 있고, 그나마도 썩 반갑지 않은 게임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가기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게 되어버렸다. 코나미의 비트매니아 이후 잠시 오락실의 대 부흥기를 맞이하고 그 유행이 식음과 동시에 오락실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중론이고,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 이후로 PC방의 창궐이 오락실을 모조리 흡수했다는 것이 진리가 되어, 내 주변에서 오락실을 점점 빼앗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서울 시내의 큰 오락실과, 어중간한 크기의 오락실의 업종 변경 때문에 경쟁자가 사라진 영세한 작은 오락실들이 골목을 지키고 있어 그나마 아주 섭섭하지는 않다는 작금의 오락실이 애달프달까 서글프달까...
친구들과 왁자지껄 몰려가 동전을 소비하던 대전게임과 다인용 난투게임, 고독한 승부를 즐기게 해주던 슈팅게임과 퍼즐게임,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체감형 게임들이 방과후의 나를 기다려주던 오락실의 존재가 내 추억들이 엷어져가는 것과 함께 자취를 감춰가는 현실이 섭섭하기만 한 요즘이다. 정말, 그 많던 오락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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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어보고 싶은 대가리] | 2005. 9. 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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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전에 블로그를 열었다가, 문득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많은 부조리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안하무인격인 공무원의 불친절, 제자들의 부모를 돈+갈보로 보는 선생들, 나이를 앞세워 기초 질서를 뛰어넘으려는 몇 안되는 노인네들, 선생님을 선생으로 보면서 개기고 집나가는 꼬맹이들, 인터넷 안에선 한없이 당당한 초딩들, 코 밑의 똥내음을 맡지 못하는 정치인들, 출산이라는 신성한 사건을 군역과 동일시 생각하는 똘추 꼴페들, 여자애랑 X빠지도록 붙어먹다가 아이가 생기면 도망가버리는 또라이들, 이유야 어찌됐건 돈 많은 남자 하나만 물어서 팔자 고치려는 갈보들... 밑도 끝도 없이 떠오르는 대한민국의, 나아가 이 세상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사회적인 부조리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원인만 제거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고. 인간의 본성은 타고 난다지만 후천적인 교육으로 억제-자제-교화-순화-조교(이건 좀 아닌가..)할 수 있다는 보편타당한 논리에 의거한다면, 결국은 철모르는 애새끼 시절에 말 똑바로 안들으면 거꾸로 매달아 놓고 입에서 똥이 나올때까지 두들겨 패는게 맞는게 아닐까.. 하는, 늘 내리는 [초극단적인 가정교육의 필요]라는결론에 도달해 버렸다. 음.. 내 조카들이나 내 새끼들이 말 안들으면.. 저렇게 할 수 있는 자신도 없는 주제에 말이지. 나 자신도 싸가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이것도 가정교육의 부재가 원인이라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도되는 것 아닌가? 생각은 꼬리를 물고, 나는 퇴근을 해야겠다. 문득 키보드를 두들기고 싶어서, 적어보았다. 내 친구들과 내가 부모가 되면.. 애들 똑바로 키워야겠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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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어보고 싶은 대가리] | 2005. 8. 3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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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대한민국은 후진국이다..라고 쓰려다가, 조국을 비하하는 것 같아서 타이틀을 고쳤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트랙백 주소(존슨의 블로그)에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요 며칠 사이에, 친일 행각을 벌인 인사들에 대한 과거 청산 운운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다시금 일본의 과거 만행을 들춰내며 반일 감정에 열을 올려가는 가운데,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일본에게, 나아가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나라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 있으니 바로 시민의식이다. 정확히는 가정교육이고, 질서 의식이다. 혹시 섵불리 일빠 어쩌고 하실 고결한 한국놈들을 위해서, 나는 내 조국 한국을 사랑한다는 점을 적어둔다.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들을 붙잡고 일본의 특이한 점을 들어보라고 하면 아마도 어깨를 부딪혔을 때 먼저 사과를 하고 들어오는 모습들을 꼽을 것이다. 나도 비교적 성질이 괄괄한 사람들이 많다는 오사카에 갔을 때에도 당황스러울 만치 그런 모습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물론 이것은, 일본인들 특유의 혼네-다테마에에서 비롯되는 행동양식이기는 하다. 즉 모든 일본인들이 그런 행동에서 유발되는 친절과 선량이라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양식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쓸데없는 분쟁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고 사소한 트러블을 기분좋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점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점이 선진국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본 사회의 긍정적인 한 모습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미국이나 유럽의 예를 들어도 좋겠지만, 내가 직접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체험한 적이 없으므로 패스. 트랙백한 포스팅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비단 일본이 미운 한국인들이 반일감정을 한껏 담아 일본에 시위하는 모습은 절대 아닐 것이다. 사탕 맛나게 까먹고 봉투를 버리려고 두리번 거리려다가 반은 장난으로, 반은 진심으로 (아마도 정말 아무생각없이 조선땅에서 하던 습관 그대로) 통에다가 집어넣은 것일게다. 성차별적인 발언을 추가하자면 봉투안의 내용물로 미루어 볼 때 간식을 즐기며 방학 말미를 빌어 일본에 놀러간, 귀엽고 깔끔한 조선 처자일지도 모른다.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들은 어릴적 국민학교에서 배웠다. 길가다가 휴지가 보이면 가까운 휴지통에 넣읍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한 손을 들고 건넙시다. 질서를 지킵시다. 그리고 그걸 배우고 돌아온 날 저녁 쯤, 엄마 혹은 아빠 혹은 이모 혹은 형-누나와 동네에 놀러나갔다가 배운 것을 실천했을 때 돌아오는 힐난을 경험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것은 거짓말이라는 인식이 국민학교 1학년 때 이미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한다. 선생님은 선생이 되고, 꼰대가 되고, 담탱이가 되어간다. 그리고 결국 질서의식-시민의식은 플랜카드와 홍보 문구에 등장하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박혀간다. 길가다 더워서 음료수-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남은 부산물들은 당연히 길가에 휙휙 버리는 것이 맞다. 다른사람이 그러는 것은 비난하면서, 나는 바쁘고 편리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행동으로 만들어 간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그런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설령 제지하더라도 아이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행동을 따라가기 마련이다-아이들은 준법-질서라는 것에 대해 둔감해져간다. 대단히 암울한 시나리오를 적어 놨지만, 우리는 실제로 보고 있지 않나. 고깃집에서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꼬맹이들은 우리의 조카-아들-딸들이고, 그 부모들은 우리의 부모님이고 형제다. 요즘은 안그러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당장 인터넷에서 우리들은 초딩들에게 테러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결국 어릴 적 부모님들이 말하던 대로, 자신들의 잘못으로 부모님을 욕먹이고 있지 않은가. 어째서, 젊고 지각있는,선진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부모들은 그렇게도 질서의식과 시민의식을 가정교육으로 아이들에게 넣어주지 않는 것인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기 마련이다. 다만, 경제가 성장하고 인터넷 대국이 된 지금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뻘건 엄마 출신의 젊은 피들이, 20년전 바르세이유의 벽에 '개똥이 왔다가다' 라고 새기던 촌스런 꼰대들이 하던 짓과 다를바 없는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걸 보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북조선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결코 선진국이 아닌 것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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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어보고 싶은 대가리] | 2005. 7. 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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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마사루 라는 만화가 있다. 거기서 등장하는 어이없는 동작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쪽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법 인기도 있고, 유명하기도 한 것이 '엘리제의 우울'이다. 이게 도대체 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멋지다 마사루'를 읽어보던가, 각종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엘리제의 우울'을 쳐 보면 될 것이다. '엘리제'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름은 역시 누가 뭐래도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피아노곡..이라는 느낌의, 음악에 조예가 없는 나같은 사람도 대강 어떤 곡이고 느낌인지 알 수 있으니. 음악에 소견이라곤 없는 나지만, 어린시절에 어딘가에서 읽었던 이야기에 의하면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곡은 베토벤이 사랑했던 '테레제'라는 여인을 위해서 만들어진 곡인데, 곡명에 그녀의 이름을 쓰는 것이 좀 그랬던지(이것이 그녀에게 피해를 줄까 두려웠던 것인지 본인이 부끄러워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읽고서 꽤 재미있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최근에 좀 우울하다. 여기서 '좀'은 [나는 빌게이츠보다는 돈이 '좀' 없다]의 '좀' 되겠다. 굳이 뜬금없이 '엘레제의 우울'을 가져다 쓴 것은, 나의 우울이 실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엘리제의 우울'이 실연을 뜻하는 슬픈 동작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실연으로 인해서 최근 취하고 있는 나의 행동거지들이 어떤이들의 어떤 시각으로 보기엔 그저 웃길 뿐일 수도 있기에 문득 '엘리제의 우울'이라는 말이 떠올랐을 뿐이다. 아무 영양가도 없는 글이지만, 그냥 문득 적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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