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걷는 것이 너무나 즐거울 때가 많았다. 항상 즐겨 입는 편안하고 심플한 옷에 약간 헐렁하게 신은 신발과 함께 태양이 하품을 하는 한적한 도시를 걸어다니는 건 너무나 즐거운 것이다.
언제나 약속이 있어서-사람을 만나기 위해, 용무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도시로 나아간다. 지금의 나는 자유로움 그 자체를 만끽하고 있는 젊은이인 것. 버스가 토해내는 인파 속에 섞여 적당히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올라서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걷기 시작했을 때의 그 기분…. 아무 생각 없는 상태에서 익숙한, 혹은 익숙지 않은 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나가는 건 내 자유의 표현인 듯 가볍기만 하다. 남들보다 조금 빠른 걸음을 옮기며 내 옆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 눈을 굴리며 1초 안팎의 짧은 시간에 이런 저런 사람을 보며 때론 놀라고 또 때론 웃으며 레이싱 트랙을 미끄러지는 유유한 레이싱 카처럼 사람들을 헤쳐나가는 것은…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걸을 수 있다는 것, 남의 방해받지 않고 내키는 데로 걸어다닌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지하도도, 육교도, 보도도, 때론 한적한 산책로도 내가 가진 걸음걸이의 자유를 받쳐주는 소중한 공간인 것. 그곳의 풍경들, 그리고 시간들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증해주는 것인 거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걸어다니는 것은 즐거운 거다. 거리와 도시는 계절마다 틀린 색과 풍경을 제공하고 하루하루 차츰차츰 그 공간의 보행을 즐기는 것은 내가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는 증거다.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목이 마르면 차가운 생수 한 통과 함께 잠시 휴식도 찾고, 가끔 귀에 있는 이어폰의 음악도 내가 이동하는 시간이 즐거운 것임을 증거하고 나는 그 시간을 소중한 것으로 만듦에 성공한다.
가끔 모르는 곳을 혼자 힘으로 찾으려 할 때는 꽤나 재미있을 거라는 예감에 절로 흥이 나려고 한다. 목적지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알아두고 기억한 뒤, 씩씩한 발걸음으로 찾아가는 거다. 마치 현대의 공간을 탐험하듯이 그 주변을 발이 아프리 만치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힘들게 찾는 거다. 물론 지치고 힘도 들고 시간도 걸린다. 허나 당연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이 아니다. 내겐 시간이 있다. 생수 한 통, 초코바 하나, 그리고 음악이 함께 한다면 내 튼튼한 두 다리로 가지 못할 곳이 없다. 조금은 어지러운 아스팔트 위의 빌딩 숲을 헤매다 빛나고 있는 목적지에서 용무를 보고, 이젠 알고 있는 조금 전의 낯선 거리를 역으로 걸어 돌아오는 길은 정말 보무도 당당한 모습으로 생각하여 상쾌한 피로감을 느낀다.
홀로 걷는 거리는 내게 고독의 양면을 느끼게 한다. 수많은 인파 속을 지나가지만 결국은 나 혼자 가는 길-거기서 느끼는 건 혼자라는 외로움과 혼자라는 자유다. 이 모순적인 느낌은 나로 하여금 꽤나 즐거움을 맛보여주는 것이다.
혼자라는 외로움-그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들, 사람들이 함께 있어 기쁜 시간이 있듯이 순간적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외롭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는 것은, 그리고 그것조차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한 걸음걸음마다 알아간다는 것은 조심스레 사금을 캐는 것과 같은 즐거움인 것이다. 또 혼자라는 자유도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나의 경쾌하고 무겁고 자유분방한 발걸음을 즐기고 내가 원하는 무언가와 함께 하고 또 내가 원하는 곳으로 움직여 간다는 것은 흔한 RPG의 대리적인 자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즐거움인 것이다.
혼자서 걸어가는 길이지만 완전한 혼자는 아니다. 분주한 발과 눈에 비해 한가한 귀를 달래주는 이어폰의 음악이 있고 출출함을 달래주는 초코바가 있고 갈증을 달래주는 생수한통이 있다. 가끔 드는 생각에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은 사람들을-혹은 나를 걷게 하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일부러 걷는 탓에 조금 지칠 때가 오면 옆을 스쳐 가는 풍경 중에서 편의점을 찾아 값싼 초코바 하나와 생수 한 통을 집어든다.
비싼 초코바나 과자 따위는 안 된다. 비싼 것은 내가 걷는 길을 사치스럽게 하고 과자는 자유로이 흔들릴 내 팔을 그 봉지로써 묶어두기 때문이다. 또 콜라나 다른 음료수도 안 된다. 음료수의 맛이나 탄산은 한순간 나의 입을 즐겁게 하고 나의 걸음을 상쾌히 하지만 다 먹고 나서 얼마 뒤의 내 입은 약 기운이 떨어진 마약 환자처럼 또 다른 텁텁함과 갈증을 부른다. 그건 나의 걸음에 방해가 된다. 그것 역시 내가 걷는 이유와 맞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초코바를 씹고 생수를 마시며 터벅터벅 걷는 나는 적절한 기운과 즐거움을 얻으며 목적지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걸음 중에 듣는 음악-나는 귀가 짧아서 장르를 불문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만 녹음해 둔 카세트 테이프 한 두개를 가지고 길을 나선다. 느린 음악과 빠른 음악이 대중없이 섞여있는 테이프의 레퍼토리는 나의 걸음 속도를 조절하고 또 내 기분을 조절한다. 100% 알아들을 수 없는 음악들의 템포에 맞춰 내 보폭이 변하고 멜로디의 느낌은 잠시 나의 감수성을 자극하여 준다.
아스팔트를 걸어가는 내 마음이 일순간이나마 들길, 풀밭길, 우주를 걷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많은 내 또래의 젊은이들처럼 나도 음악만 들을 수 있다면 10시간이라도 걸어줄 수 있다고 할까?
목적지를 향할 때의 활기찬 걸음도 걷지만 밤이 되어 지친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때의 걸음-그것은 비록 기운이 없고 조금은 허탈한 걸음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갈 때의 백리는 올 때의 오십리라는 것을 실감하며 걷게된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조금씩 다가오는 나의 휴식처, 나의 안식처, 이번엔 너무나 익숙한 풍경 속으로 걸음을 옮기며 눈감고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그 길을 ‘어쨌든 해치우고 보자’ 라는 기분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또 다시 생각한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내가 가고자 했던 목적지는 이 출발점, 나의 휴식처, 나의 안식처였던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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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경에, 군생활 하면서 끄적였던 노트의 것을 언젠가 옮겨 놓은 것을 찾아내어 올려본다. 본문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는 cdp와 mp3p를 거쳐 지금은 프습이 되었고, 대학시절처럼 내키는대로 걸음을 옮기지는 못하지만, 오랫만에 약속이 취소되면서 얻게된, 그러면서 나름대로 화창한 여름날의 오후는 이 글의 느낌이었다.